나의 이야기

모란(목단)

민들레a 2022. 4. 22. 07:28

 봄에 피는 아름다운 꽃 중에서 모란(목단)을 손꼽을 수 있는 대는 꽃이 탐스럽고 귀하게 보이기 때문이다. 모란은 중국 중서부 지방을 원산지로 하는 자그마한 꽃나무로 원래는 약용식물로 재배되어 왔지만 당나라 이후 모란은 시를 쓰고, 그림을 그리는 대상물이 되었다. 아름답고 화려한 꽃의 대표 자리는 모란이 차지했기에 예로부터 화왕(花王)이라 하여 꽃 중의 꽃으로 꼽았으며, 화려하고 위엄과 품위를 갖추고 있는 꽃이기에 부귀화(富貴花)라 부르기도 하는 모란은 중국인들이 가장 사랑하는 꽃으로 청나라 이후 중국의 국화로 대접받았는데 청의 멸망으로 모란은 국화의 상징성을 잃게 되면서 다시 중화민국시절(1929년)에 매화로 바꾸었으나 아직도 모란을 국화로 여기는 편이 많아서인지 중국은 공식적으로 지정된 국화는 현재까지도 없다.

 

 모란은 작약과의 낙엽관목으로 5월경에 꽃이 피는데 여러 겹의 붉은 자줏빛의 꽃잎이 5~8조각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작은 접시만 한 큰 꽃이 가지 끝에 피는데 일주일쯤 간다. 꽃의 색깔은 붉은색 계통이 가장 많고 여러 원예품종이 있으며 꽃이 지면 나무는 불가사리 같은 모양의 열매를 달고 한 여름동안 열매를 익게 하는데 10월경에 익은 열매는 주머니가 터져 나오는 씨의 모습이 둥글며 흑색이다. 이와 비슷한 식물로는 작약(함박꽃)으로 꽃과 열매, 잎의 모양, 뿌리를 약용하는 면에 까지 비슷하며 모두 같은 작약과에 속하기에 목단을 목작약이라고도 하는 것을 보면 구분을 해야 하는데 일반적으로 모란을 목단이라고 하고, 함박꽃은 작약이기에 모란이 나무라면 함박꽃은 풀로 목본과 초본의 차이로 쉽게 구분을 한다.

 

 모란이 중국으로부터 우리나라에 처음 들어온 것은 신라 진평왕 때로 알려져 있다. 삼국유사(三國遺事)에 의하면 신라의 선덕여왕이 공주였을 때 중국 당나라 왕이 모란 그림 1폭과 모란 씨 3되를 보내왔다. 그때 모든 사람들은 모란꽃에서 대단한 향기가 날 것이라고 주장했으나 선덕여왕만은 그림에 벌과 나비가 그려져 있지 않은 것을 보고 향기가 없을 것이라고 했다. 실제로 모란 씨를 심어 꽃을 피워보니 향기가 나지 않아 모두 선덕여왕의 뛰어난 관찰력에 감탄했다고 한다. 중국에서는 예로부터 모란을 꽃 중에서 제일로 치는데 보기에는 화려하여 눈을 즐겁게 하지만 향기가 거의 없기에 벌도 나비도 잘 찾지를 않는다는 사실로 보아 조물주는 모두를 주지 않음이 생각나면서 세상일들을 겉만 보고 외형에만 치중하는 일이 없도록 잘 살펴야 한다는 본보기로 여기면 좋으리라.

 

 이렇게 우리나라에 들어온 모란은 이후 신라 사람들이 좋아하는 꽃이 되었으며 국보인 12세기의 청자상감모란문항(靑磁象嵌牡丹文缸)을 비롯하여 수많은 고려청자 상감과 여러 생활도구의 꽃무늬는 대부분 모란이 자리 잡았다. 조선조에 들어와서도 모란을 숭상하는 풍속은 그대로 남아 전통 혼례복이나 신방의 병풍에도 모란은 빠지지 않았으며 조선 후기에 널리 유행한 민화에는 부귀영화를 상징하는 모란이 가장 흔하게 그려졌다.

 

 아름다운 꽃과 함께 뿌리는 ‘목단피’라고 하여 한약재로 귀하게 쓰이는데 뿌리 가운데에 심이 있기에 두들겨서 심을 뺀 후(거심) 뿌리껍질을 말려서 약재로 이용하며 주로 어린이들의 성장 발달과 어른들의 노년기 보약으로 인류가 오랜 세월 동안 많이 이용해온 ‘육미원’ 이라는 처방에 목단피가 꼭 들어가기에 한약을 복용한 모두는 알게 모르게 많이 먹은 생약재이기도 하다.(펌)

 

 

 

 

 

모란이 목단이고 작약이 함박꽃이라고 알고있는데
상세하게 알려고하면 머리 찌끈찌끈 ~

 

불영계곡 ~

4월20일인데 벌써 등나무꽃이 피어 장관이다.

 

 

 

 

 

불영계곡 나오면서 울진 행곡리 처진 소나무 ~

 

 

울진 내려오면서 ~ 저녁 먹으며 

경주 야경이 황홀하다.

월정교랑 처진 버드나무 찍어라넹 

영숙이는 사진 질색인디 왠일로  ㅋ 

월정교 ~ 칠성교와는 다름

 

경주 춘양교와 월정교는 현재 국립경주박물관의 서편과 교촌 한옥마을 남편의 강바닥에 그 터가 남아있다.

기록에 따르면, 『삼국사기』경덕왕 19년(760)조에 "궁의 남쪽 문천(蚊川)에 '월정과 춘양'이라는 두 다리를 놓았다."

라고 전한다.

발굴조사 결과, 춘양교지는 다리 양쪽의 교대(橋臺)와 날개벽 그리고 양쪽 교대사이의

강바닥에 주형(舟形)교각 3개로 이루어져 있다.

이를 근거로 다리의 규모는 길이 55m, 높이 5m, 다리 상판의 너비 12m 정도였을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

교량에 사용된 석재 1469점이 하천 바닥에서 발견됐다.

장마철에 유실될 위험이 커 석재유물 728점을 이전, 전시했다.[1]

월정교지는 다리 양쪽의 교대와 날개벽 그리고 4개의 주형교각으로 이루어져 있어서

다리의 길이는 약 60m로 추정된다. 또한 교각 사이에서 불에 탄 목재와 기와 조각 등이 발견되어

다리 상판의 구조는 기와지붕을 가진 누각(樓閣)의 모습이었을 것으로 보고 있다.

월정교지는 발굴조사 결과를 바탕으로 다리 모습과 구조에 대한 고증연구를 거쳐,

2008년부터 2018년까지 교각 및 누교와 다리 양쪽에 문루(門樓)를 갖춘 현재의 모습으로 복원되었다.

한편 '춘양교와 월정교'는 시대에 따라 민간 신앙이나 전설 등이 덧씌워져

'효불효교(孝不孝橋)' 또는 '칠성교(七星橋)' 등으로 불리기도 하였다.

춘양교지와 월정교지는 통일신라시대 교량의 구조와 축조기술을 살펴볼 수 있는 고고학적인 자료로서, 당시에는 문천으로 단절된 월성의 북쪽과 남쪽을 연결하는 중요한 교통로 역할을 하였을 것이다(펌)

 

 

 

뼈대 있는 가문이라고 어린 나이에 시집 왔더니

초가삼간에 화전 밭 몇마지기가 전 재산이다.

정신없이 시집살이 하는 중에도 아이는 가졌다.

부엌일에 농사일 하랴 길쌈 삼으랴,

저녁 설거지는 하는 둥 마는 둥

파김치가 돼 안방에

고꾸라져 누우면 신랑이 치마를 올리는지 고쟁이를 내리는지

비몽사몽 간에 일을 치른 모양이다.

아들 여섯 낳고 시부모 상 치르고 또 아이 하나

뱃속에 자리잡았을 때 시름시름 앓던 남편이 백약이 무효,

덜컥 저 세상으로 가버렸다.

유복자 막내아들을 낳고 유씨댁이 살아가기는 더 바빠졌다.

혼자서 아들 일곱을 키우느라 낮엔 농사일, 밤이면 삯바느질로

십여년을 꿈같이 보내고 나니 아들 녀석 일곱이 쑥쑥 자랐다.

열여섯 큰아들이 “어머니, 이젠 손에 흙 묻히지 마세요” 하며

집안 농사일을 시원시원하게 해치우고,

둘째는 심마니를 따라다니며

약초를 캐고 가끔씩 산삼도 캐 쏠쏠하게 돈벌이를 하고,

셋째는 형들이 등을 떠밀어 서당에 다니게 됐다.

일곱 아들이 효자라,

맛있는 걸 사다 제 어미에게 드리고 농사는 물론

부엌일도 손끝 하나 못 움직이게 했다.

살림은 늘어나고 일을 하지 않으니

유씨댁은 몇달 만에 새 사람이 됐다.

새까맣던 얼굴이 박꽃처럼 훤해지고 나무 뿌리 같던 손이 비단결처럼 고와졌다.

문제는 밤이 길어진 것이다.

베개를 부둥켜 안아봐도,

허벅지를 꼬집어봐도 잠이 오지 않는 것이다.

그러다가 마침내 유씨댁은 바람이 났다.

범골 외딴집에 혼자 사는 홀아비 사냥꾼과 눈이 맞았다.

 

유씨댁이 한 번도 느껴보지 못한 남자의

깊은 맛을 알게 된 것이다.

일곱 형제가 잠이 들면 유씨댁은 살며시 집을 나와

산허리를 돌아 범골로 갔다.

어느 날 사경녘에 온몸이 물에 젖은 유씨댁이 다리를 절며 집으로 돌아왔다.

개울을 건너다 넘어져 발을 삔 것이다.

일곱 아들은 제 어미 발이 삐었다고 약방에 가서 고약을 사오고

쇠다리뼈를 사다 고아줬다.

며칠 후 유씨댁은 발의 부기가 빠지고 걸을 수 있게 되자

또다시 아들 일곱이 잠든 후 집을 빠져 나와 범골로 향했다.

유씨댁은 깜짝 놀랐다.

개울에 다리가 놓여 있는 것이다.

일곱 아들의 작품이었다.

사람들은 그 다리를 효불효교(孝不孝橋)라 불렀다.

이승에 있는 어미에게는 효요,

저승에 있는 아비에게는 불효인 것이다.

이 이야기는 동국여지승람(東國輿地勝覽)에 기록되어 있으며

경북 경주시 인왕동에 있었던 신라시대의 다리(경상북도 사적 제 457호 지정)이다.

일명 칠성교로 불리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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