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에서 ‘인연(因緣)’이라는 말을 많이 쓴다. 인(因)과 연(緣)은 다른 개념이다.
인은 주관적 요인이고 연은 객관적 요인이다. 내가 아무리 조용히 살고 싶어도
북한에서 폭탄을 떨어뜨린다고 하면 마음이 불안할 수밖에 없다.
나와 내 마음이 인이고 주변 상황이 연이다. 인과 연이 마주쳐야 모든 것이 충실해진다.
인을 먼저 다스린 후 연이 충실해지기를 기다려야 한다. 또한 나만 열심히 한다고 잘 되는 것이 아니다.
주변 여건과 시절 인연이 안 되면 잘 안될 수 있다. 내 노력을 우선하되 꾸준히 연이 무르익기를 기다려야 한다.
불교 수행에서의 깨달음도 마찬가지다. 깨달음을 얻으려면 깨달음의 인과 연이 갖춰져야 한다.
깨달음의 인은 내 수행의 관찰이요, 연은 부처님의 가르침인 게송이다.
아무리 열심히 수행해도 부처님의 게송을 만나지 못하면 깨달음을 얻지 못한다.
‘모든 것은 마음이 앞서가고 마음이 이끌어가고 마음으로 이루어진다.
깨끗한 마음으로 말하고 행동하면 행복이 저절로 따르리라. 마치 그림자가 몸을 따르듯이.’
‘일체유심조(一切唯心造)’라는 <화엄경>의 표현도 있지만 불교에서는 마음이 먼저고 현실이 나중이다.
마음이 앞서가고 마음이 이끌어 간다. 여러분들이 어떤 마음을 먹느냐에 따라 앞날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
또한 게송은 마음의 문을 열어주는 역할을 한다.
게송 하나라도 나의 것으로 만들어 남에게 전하는 것이 최고의 복덕이다.
불자들은 듣는데만 열중하지, 남에게 전하는 데에는 인색하다. 보시 가운데 최고가 법보시다.
그리고 법보시를 행하는 최고의 비결이 게송을 외워서 남에게 전해주는 것이다.
여러분도 <화엄경> <금강경> 등 여러 경전의 게송 가운데 하나를 외워볼 것을 권한다.
앉으나 서나 게송을 외우는 것이 ‘게송명상’이다. 이는 최고의 수행법이다.
화가 나도 욕심이 나도 그 게송을 외워보자. 우리의 마음은 하나에 초점을 맞추면 다른 것은 흐려진다.
근심과 걱정이 몰려올 때 얼른 게송을 외운다면 이들이 줄어드는 것을 느낄 수 있다.
여러분들은 오늘 이 시간부터 나의 게송을 하나씩 선정해보자.
그리고 하나라도 확실히 알고, 남에게 전해줄 수 있을 정도로 외워보자.
또한 건강, 행복, 이익 등 모든 것들이 원인을 찾아서 해결해야 한다.
밖에서 찾게 되면 윤회를 면치 못할 것이다. 불교의 중요한 가르침이 바로 인과설(因果說)이다.
콩 심은데 콩 나고 팥 심은데 팥이 난다. 콩을 수확하고 싶으면 콩을 심고 팥을 수확하고 싶으면 팥을 심으면 된다.
더 이상 부처님께 구걸할 필요가 없다. 그러면서도 기도와 수행을 하는 이유는 가피를 입으면 순풍에 돛 단 듯 갈수 있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내 노력은 인(因)이요 불보살님의 가피는 연(緣)이라는 말이다.
마지막으로 다음 게송을 함께 독송해 보자. ‘웃자 웃을 일이 생긴다.
웃을 일이 생겨서 웃는 것은 누구나 할 수 있다.
먼저 웃음으로서 웃을 일이 생기게 만드는 것은 인생의 주인공이 할 수 있다.’
*옮겨온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