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해하기 어려웠던 마의상법
초한지(楚漢志)는 중국의 역사 소설입니다.
진시황 사후(2200년 전) 때부터 초나라 '항우'와 한나라 '유방'의 라이벌 관계를 묘사하고 있지요.
이 소설은 명(明)나라 (1368년 - 1644년)후기에 쓰여진 것으로 알려져 있지만 단순한 소설이 아니라 역사적 사건을 바탕으로 한 이야기입니다.
이 책에서 '항우'가 진시황의 무덤을 파헤치고 불을 질렀다는 내용 하나만 보더라도 사실에 가까운 소설이라는 것을 우리는 알 수 있습니다.
여기에 보면 '항우', '유방', '한신' 등 주요 등장 인물들의 얼굴에 대한 평이 나옵니다.
'항우'의 관상은 어떻고 '유방'은 어떻고 '한신'의 상은 어떻다라는 관상적 설명이 수도 없이 나오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춘추시대(春秋時代) 진(晉)나라(서진~동진. 265년~ 420년) 사람 고포자경(姑布子卿)이 공자(춘추전국 시대 BC 770년 - BC 221년. 학자.)의 눈이 겹눈동자인 것을 보고, 장차 대성인(大聖人)이 될 것이라고 예언한 것은 상법의 오묘함으로 풀이한 것입니다.
관상은 인류의 역사가 시작된 이래 원시 씨족사회부터 끊임없이 발전되고 축적되어 온 통계학입니다.
이론상의 통계가 아닌 눈으로 보고 온몸으로 체득해서 나온 실전 통계학이니 그 적중률은 타 운명학과는 비교가 안될 정도로 높습니다.
관상하면 마의상법을 빼놓을 수 없습니다.
마의상법을 쓴 마의선생은 늘 삼베옷을 입고 살았다고 해서 지어진 이름이고, 송(宋)나라(960년 - 1127년) 초기때 분입니다.
마의선생은 중국 화산 석굴에서 진박(陳搏)을 제자로 삼아 은거하였는데, 겨울이면 화로를 끼고 앉아 화로의 재 위에 글씨를 써서 상법을 가르쳤다고 합니다.
진박은 훗날 송나라 태종의 부름을 받아 벼슬하기를 권했으나 이를 사양하고 스승인 마의선생이 기거하던 석실에서 수련을 계속 쌓았습니다.
송 태종은 진박의 공명을 탐하지 않는 정신을 높이 기려 '진희이(陳希夷)'라는 시호를 내렸습니다.
진희이 선생이 쓴 관상서로는 '상리형진'이 전해옵니다.
마의선생께서 이르기를,
<사람 각자는 이 세상에 태어나는 그 순간부터 부귀와 빈천, 현명함과 어리석음, 수명, 화복, 선악이 결정되어진 채 육신을 입게 되는 것이다.
사람 각자의 운명은 골격, 피부, 기색, 목소리 등의 생김을 보고 짐작할 수 있는데, 이 같은 이치를 아는 자가 없는 것을 애석하게 생각해 왔다.
관상이란, 사람마다 다르게 생긴 형상을 보고 과거, 현재, 미래 일을 예측하는 방법이다.
그러나 이것은 워낙 심오하고 차원이 높기에 평범한 자는 가르침을 줘도 알지 못하고, 신묘한 기운을 타고난 올바른 마음의 소유자여야만 이해할 것이다.>
마의 선생은 기거하던 석실에 비장돼 전해 내려오던 옛날 신선의 비급을 분석하여 진희이(陳希夷)에게 전수하였습니다.
마의상법과 함께 쌍벽을 이루는 달마상법(達磨相法)은 현재 서점에 유통되고 있는 마의상법 책자에 같이 수록되어 있습니다.
달마조사(達磨祖師)는 천오백여 년 전에 태어난 남인도 향지 국왕의 셋째 아들입니다.
달마조사는 남부 인도에서 수련 득도하고 중국에 불교를 전파하기 위해 배로 바다를 건너 중국 양나라 보통원년(서기 520년) 9월에 중국 광주 남해에 이르렀습니다.
양(梁)나라 무제의 궁중에서 오랫동안 설법하였으나 별다른 효과를 거두지 못하여서 인연처가 아님을 알고 북위(北魏)의 수도인 하남성의 숭산(嵩山) 소림사(少林寺)로 들어가 아홉 해를 면벽 수련을 하였습니다.
이후 달마의 수련법은 선종(禪宗)의 효시가 되었습니다.
당시, 달마조사는 불법(佛法)만 가지고는 일반 대중의 마음을 사로잡지 못한다는 것을 느끼고, 불법이 좀더 대중과 가깝게 하기 위해 관상에 관심을 가지고 공부했는데, 그 시기가 숭산 석굴 면벽수련 시절이 아니었을까 짐작됩니다.
달마상법 첫 장에는 구년 면벽 후 나온 일갈이 나옵니다.
<구년 동안 석굴의 벽만 바라보았더니 몸뚱이는 뼈만 앙상하게 남았다. 한 알의 좁쌀 같은 빛이 들어오는 석실에서 돌이켜 보니 여태 세상을 빈껍데기로 살았다는 생각이 든다.
인간의 몸 안에는 언제나 변치 않는 넓고 큰 세상이 들어 있고 또한 거기에는 인간의 눈으로 볼 수 없는 것들로 가득 차 있다.
황하의 물은 하늘 위로부터 오므로 근원이 깊어 큰 바람이 불더라도 두려울 게 없다.
내가 바다를 건너와 불법(佛法)을 모두 전하였으나 상법(相法)을 전해줄 사람이 없었는데, 오늘 너를 만났으니 내 사명은 다 마쳤다.
훗날 이 상법을 어리석은 자에게 가르쳐주거나 엉터리로 전수해 주는 것은 하늘의 이치를 거스르는 것이니 경계하고 삼가할 지어다!!>
마의상법을 보면 비슷한 내용이 매우 자주 반복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이것은 달마대사와 마의선사 두 분만이 상법을 지은 것이 아니라 중간에 다른 이들에 의해 수없이 첨부되고 삭제 되었을 것이라는 증거이기도 합니다.
그런데 관상을 배우는 사람마다 마의상법을 거론하지만 애석하게도 정작 그 책을 다 읽고 제대로 해석한 사람이 드문 실정입니다.
서점에 나온 마의상법은 현재 3권이 있습니다.
M출판사에서 맨 먼저 나온 한자로 된 마의상법은 여기저기 흩어져 있던 원본을 한권으로 통합한 책 같아 보입니다.
이 책을 근본으로 삼아 해석한 책 역시 M출판사에서 나왔습니다.
원본에 충실하려고 노력한 흔적은 좋지만, 해석을 너무 어렵게 그리고 잘못 해석한 부분이 많이 눈에 띄었습니다.
얼마나 어렵게 해석했느냐 하면 대형 한글사전과 옥편을 옆에 끼고 일일이 손가락으로 짚어가며 읽어야 할 정도로 까다로웠습니다.
글씨는 눈에 들어오지만 뜻이 무엇인지 알려면 읽었던 문장을 읽고 또 읽어도 이해불가의 내용들이 많습니다.
20년 넘게 관상 공부한 저 마저도 그런데 일반사람들은 말해 무엇하겠습니까.
그런 마의상법 해설서를 다 읽었다고 자랑하는 사람이나 잘못 해석된 그 책을 보고 사람들에게 가르치는 선생이나 답답해 보이긴 마찬가지 입니다.
M출판사 발행 이외에 또다른 마의상법 해설서로는 J출판사가 펴낸 책이 있습니다.
그런데 이 책은 각 부위별로 나누어 해석하는 노력을 했지만 원본 해석을 전부 하지 못하고 작은 일부에 그치고 말았습니다.
(제가 소장하고 있는 상서는 원충철(袁忠澈)이 저자로 되있는 오래된 책이 있습니다. 원충철은 명(明)나라(1368년 - 1644년)때의 사람입니다.)
마의상법에 보면 손금 부분이 나옵니다.
그 내용 보면 하품이 절로 나옵니다.
도대체 있을 것 같지도 않은 거북 무늬 손금, 고기비늘 손금, 매화무늬 손금... 등등 수백 만명 중에 한사람 있을까 말까한 손금 형태의 설명으로 이루어졌습니다.
관상가들이 그런 손금을 해석해 내려고 얼마나 골머리 싸맸을까 생각하니 헛웃음만 나옵니다.
관상 단어에서도 이해불가한 말들이 늘려있습니다.
얼굴 주름 설명에서 등사(螣蛇)무늬라는 단어는 차라리 애교에 속합니다.
<마의선생 석설 이부>편에 보면 '금쇄부, 은시가' 가 나옵니다.
상법을 압축해서 시가(詩歌)로 지은 내용인데, 내용은 짧지만 관상 수십년을 공부한 사람이 아니라면 이해하기 어렵습니다.
마의상법을 입에 올리는 사람도 많고 자칭 관상가도 세상엔 많이 늘려있지만 나라 안에 제대로된 해설서 한 권 없다는 게 너무나 창피하고 분했습니다.
그래서 지난 2년 동안 거의 대부분을 산속에 틀어박혀 겨울잠 자는 곰처럼 꼼짝않고 마의상법을 새로 해석했습니다.
오늘은 제 의지와는 상관없이 은연 중에 제 자랑을 한것 같지만, 우리나라의 관상학을 한 차원 높이려는 노력을 어느 이름없는 사람이 해냈다고 생각해 주시면 고맙겠습니다.
2010. 4 -本主-